지난 6월 촬영한 제주시 한림항 폐유보관시설 내부 모습. 기름이 흥건하고 온갖 쓰레기가 투기된 모습. 이창준 기자어선 폐윤활유가 관리 부실로 제대로 처리되지 못하면서 불법투기 우려까지 낳는 가운데, 이미 3년 전에도 국회에서 지적받았던 사안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수년간 담당 기관들이 사실상 손을 놔 현재는 제도 개선은커녕 현장 혼란만 가중되고 있다.
◇위성곤 의원 "수거 주체·방식 제각각"…제주는 더 열악26일 CBS노컷뉴스 취재 결과, 위성곤 의원(더불어민주당·당시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은 2022년 10월 수협과 해양수산부를 상대로 한 국정감사 자리에서 "선박에 사용되고 남은 폐윤활유 등의 폐유 수거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무단 투기나 방치로 인한 바다 오염이 가중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위 의원은 특히 "폐윤활유 수거 주체가 수협·지자체·민간업체 등으로 분산돼 있고, 수거 방식도 제각각이라 책임 있는 수거가 이뤄지지 않는다"며 "결국 불법 투기를 방조하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3년이 지난 지금도 상황은 여전하다. 행정시가 지역별 수협에 보조금을 주고 관리를 위탁하면, 수협은 해양환경공단에 수거를 맡기고, 공단은 다시 민간업체에 처리를 맡기는 복잡한 구조가 유지되고 있다.
애월항 폐유보관시설. 어민이 손가락으로 폐윤활유 수집통을 가리키고 있다. 이창준 기자특히 제주는 섬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수거 체계가 더 복잡하다. 일반적으로 수거된 폐윤활유는 정제 후 재활용되지만, 제주에는 관련 수요가 없어 폐윤활유 처리 업체가 한 곳도 없는 실정이다. 즉 모든 폐윤활유를 도외로 반출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뒤따른다. 기상 악화 등으로 반출이 지연되면 수거가 밀리고, 윤활유통이 항·포구에 쌓이거나 바다에 불법 투기되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우려도 있다.
수거 인프라가 열악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도내 폐유보관시설은 84곳에 달하지만, 공단 수거 차량은 3대뿐이고 이마저도 1대는 최근에 도입됐다. 또 각 항·포구에서 수거한 폐윤활유를 일괄적으로 보관하는 저장 탱크가 제주시와 서귀포시에 하나씩 있는데, 이 용량이 적어 도외로 반출하는 빈도가 잦은 거 같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위 의원 역시 "저조한 저장율 때문에 폐유가 무단 투기된다는 어민 증언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해 해양폐기물 관리를 맡은 해양환경공단 공단 관계자는 "섬이라고 반출이 지연되진 않는다. 주 1회 이상 주기적으로 반출한다"며 "오히려 제주는 다른 지역보다 수거 차량이 1대 더 있고, 저장 탱크 용량도 평균 수준"이라고 반박했다.
청정 제주 바다를 유영하는 남방큰돌고래. 연합뉴스◇수거 체계 개선·실효성 있는 제도 시급한데 또 책임 공방수거 체계를 정비하고 실효성 있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현행 수거 체계는 어촌어항법에 따라 지자체가 권한을 갖고, 지자체는 다시 조례를 제정해 관리한다. 제주도의 경우 '어촌어항 개발 및 관리에 관한 조례'에 따라 시설 이용 주체를 어업인으로 규정하고, 이를 대표하는 수협에 관리와 책임을 함께 부여하고 있다. 하지만 이 구조가 기관 간 책임 분산으로 이어져 조례 개정을 통해 지자체의 권한과 책임을 보다 명확히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효성 있는 제도도 병행해 도입할 필요가 있다. 현재 시행 중인 어선 윤활유 실명제는 권고사항에 불과해 강제력이 없다. 하지만 배출자 추적을 통해 불법 투기를 차단할 수 있는 장점이 큰 만큼, 스티커 훼손이나 미부착을 막을 수 있도록 제도적 보완과 함께 강제성을 부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보증금제 역시 경제적 유인을 통해 회수율을 높일 수 있는 장점이 있어 도입할 만하다는 제안이 나온다.
폐윤활유 수거 절차. 2022년 10월 위성곤 의원 국정감사 자료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 윤상훈 전문위원은 "제주가 일회용컵 보증금제를 전국에서 가장 앞서 시행했고 그 성과를 인정받아 올해 유엔 세계환경의날 기념행사를 큰 규모로 유치했다"며 "폐윤활유 관리에서도 선도적 모델을 제시한다면 전국 확산은 물론 국제적으로도 주목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체계 개선과 제도 도입이 주문되는 지금도 정작 관계 기관들은 책임 공방을 이어가고 있다. 제주도는 "전국적인 문제인 만큼 정부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고, 해양수산부는 "어촌어항법에 따라 지자체가 관리 주체"라고 맞섰다.
이에 대해 문대림 의원(더불어민주당·농해수위)은 "국회 지적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선박 폐유에 대한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 것은 무책임한 방임"이라며 "해수부, 수협, 해경, 지자체 등 관계 기관들이 서로 책임을 떠넘기지 말고, 현장의 혼란을 해소할 방안을 함께 마련해야 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