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한 통제 장치인데…어선 윤활유 실명제 '유명무실'

유일한 통제 장치인데…어선 윤활유 실명제 '유명무실'

실명제 시행 초기 성과…수거율 상승·무단투기 적발
8년 지난 현재 유명무실…어민들 "처음 듣는 제도" 냉랭
제도 보완하고 어구처럼 실명제 강제하자는 주장도

제주시 한림항 폐유보관시설 외부에 방치에 윤활유통과 잡다한 쓰레기들. 이창준 기자제주시 한림항 폐유보관시설 외부에 방치된 윤활유통과 잡다한 쓰레기들. 이창준 기자
어선에서 발생하는 폐윤활유가 관리 사각지대에 방치된 가운데, 이를 통제하기 위한 사실상 유일한 장치인 '어선 윤활유 실명제'마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어구 실명제처럼 강제성을 부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실명제 시행…수거율 23% 상승, 무단투기 추적도

해양경찰청은 지난 2017년 '어선 오염물질 수거 활성화' 대책의 일환으로 어선 윤활유 실명제를 전국적으로 시행했다.

이 제도는 수협이 판매하는 20ℓ 윤활유통에 고유번호가 적힌 스티커를 붙여 구매자를 특정하는 방식으로, 폐윤활유의 해양 불법 투기와 육상 무단 방치를 막기 위해 도입됐다.

제주시수협 폐유보관시설 내부에 윤활유통이 난잡하게 쌓여 있는 모습. 이창준 기자제주시수협 폐유보관시설 내부에 윤활유통이 정돈되지 않고 쌓여 있는 모습. 이창준 기자
실제 도입 직후 일정 성과가 있었다.

해경은 제도 시행 이듬해인 2018년 실명제를 통해 전국 어선 폐유 수거율이 전년보다 23%나 상승했다고 평가했다.

또 무단 투기를 적발한 사례도 나왔다. 서귀포해경은 2019년 6월 서귀포항에서 조업지로 이동 중 폐윤활유통을 바다에 버려 일대를 오염시킨 30대 어민을 스티커 추적을 통해 적발했다.

◇기대와 달리 유명무실…어민들 "실명제 있는 줄도 몰라"

그러나 시행 8년이 지난 지금, 현실은 제도 취지와 거리가 멀다.

최근 5년간 제주지역 폐윤활유 평균 수거율은 겨우 24.4%에 불과하다. 또 해상에 윤활유통과 기름이 떠다닌다는 목격담이 전해지고, 육상에서는 항·포구 폐유보관시설 주변에 윤활유통이 아무렇게나 버려지는 실정이다.

제주시 애월항 폐유보관시설 내부 모습. 어민이 폐윤활유 수거통을 가리키고 있다. 이창준 기자제주시 애월항 폐유보관시설 내부 모습. 한 어민이 가득 찬 폐윤활유 수거통을 가리키고 있다. 이창준 기자
어민들의 반응도 냉담하다.

60대 어민 양모 씨는 "스티커를 붙여본 적 단 한 번도 없다. 그냥 어민증만 확인하고 준다"고 털어놨다. 50대 어민 김모 씨도 "이런 제도가 있는 줄도 몰랐다. 주변에서 들어본 적도 없다"며 "아이디어는 좋은데 현장에선 체감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수협 직원들도 어려움을 토로한다.

도내 한 수협 관계자는 "성수기인 6~9월에는 윤활유 판매량이 너무 많아 전부 확인하기 어렵다"며 "직원이 2명뿐이라 관리에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권고사항에 그쳐…"어구처럼 강제성 부여해야"

어선 윤활유 실명제는 권고사항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현장에서 지켜지지 않아도 제재할 방법이 없고, 해경과 수협 모두 스티커 부착률이나 운영 현황을 집계조차 하지 않는다. 설령 스티커를 부착하더라도 떼어내면 그만이라 보다 실효성 있는 대책과 전반적인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

해경 관계자는 "제도가 권고에 그치긴 하나 효과가 있어 정착하길 바란다. 수협과 어민의 협조가 필요하다"며 "강제성 부여는 해수부 등 기관과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환경단체는 어구 실명제처럼 어선 윤활유 실명제에도 강제성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윤상훈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 전문위원은 "해양 생태계에 큰 피해를 준 어구는 실명제가 정착되고 있다"며 "폐유에 대해선 논의가 없었는데 역시 실명제를 강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 글 싣는 순서
①2025년 6월 20일자 노컷뉴스 : 기름 흥건하고 악취…제주 폐유보관시설 관리 엉망
②2025년 6월 20일자 노컷뉴스 : 항만 폐유보관시설 관리 부실…제주도, 전수조사 나선다
③2025년 8월 8일자 노컷뉴스 : 한림항 폐유시설 신속조치한다더니…제주도 거짓말 드러나
⓸2025년 8월 13일자 노컷뉴스 : 한림항만의 문제 아니었네…제주 폐유보관시설 '총체적 난국'
⓹2025년 8월 20일자 노컷뉴스 : 매년 '유조차 27대' 분량 폐윤활유 행방불명…관리 구멍
⓺2025년 8월 22일자 노컷뉴스 : 유일한 통제 장치인데…어선 윤활유 실명제 '유명무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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