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향소에 게시된 숨진 A 교사 추모글. 고상현 기자지난 22일 제주에서 학생가족의 민원에 시달리다 숨진 모 중학교 A 교사. 3학년 부장교사였던 A 교사가 평소 기본 수업준비 외에도 성적 처리, 고입 입시, 졸업앨범 제작 등 과중한 업무에 시달린 정황이 확인됐다. 과도한 업무에 악성 민원까지 홀로 떠안다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것이다.
◇"수업 끝나도 야근하고 주말에도 업무" 30일 유가족의 얘기를 종합하면 A 교사는 올해 학기 초부터 이달까지 수업이 끝난 뒤에도 야근을 하거나 주말에도 학교에서 업무를 보는 일이 잦았다. 기존 자신이 담당한 과학 수업 준비 외에도 학생들의 성적 처리, 고입 입시, 졸업앨범 제작 등의 업무를 담당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학교 홈페이지에 공개된 지난달 4일 학교운영위원회 회의록을 보면 A 교사는 운영위원들에게 3학년 졸업 앨범 제작에 대해서 설명한다. 올해 3월 3학년 학생 대상으로 가정통신문을 통해 수요 조사를 진행한 부분, 제작 단가, 사진관 선정 계획, 제작 방법 등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특히 A 교사는 3학년 부장교사였기 때문에 자신이 맡은 반 학생뿐만 아니라 3학년 6개 반 143명 학생의 모든 문제에 대해서 다른 교사들과 함께 고민하고 해결하는 역할을 맡았다.
지난달 4일 학교 운영위원회 회의록 캡처. 유상범 제주교사노조 교권국장은 "졸업하는 학년 부장교사를 맡는다는 건 전체 학생들의 상급학교 진학, 성적 처리 등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업무가 굉장히 많을 수밖에 없다. A 교사는 평소 수업 준비도 굉장히 충실하게 하셨고, 학생 동아리 지도, 과학대회 출전 일도 하셨다"고 했다.
"평상시에 업무도 굉장히 많으셨기 때문에 학생 가족의 민원은 추가적인 일이 돼버린 거다. 일 자체는 부지런히 하면 끝나지만, 민원은 언제 끝날지 모른다. 아무리 노력해도 해결되지 않는 학생 가족과의 갈등을 혼자서 감당하기가 굉장히 힘드셨던 거 같다"고 유상범 국장은 설명했다.
◇과도한 업무에 학생가족 민원까지 시달려 과도한 업무를 감당하는 상황에서 학생 가족 민원까지 시달렸다. A 교사의 휴대전화 기록을 보면 새 학기가 시작된 올해 3월 5일부터 학생 가족의 전화가 시작되고 이달 16일까지 수개월간 이어졌다. 주로 학생이 무단결석하고 담배를 피우는 등에 대한 생활 지도와 관련된 문제였다.
A 교사 아내는 "아침이고 밤이고 계속해서 학생 가족 전화가 왔었다. 남편은 티를 안 내려고 밖에서 전화를 받고 오곤 했었다. 숨지기 며칠 전에는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고 했다.
이달 학생 가족과의 갈등이 격화했다. 학생 가족이 지난 16일과 19일에 각각 도교육청과 교육지원청에 민원을 제기했다. A 교사가 학생에게 폭언하는 등 아동학대를 했다는 주장이었다. 학생 가족은 민원 제기 후 A 교사에게 '벌을 받든 안 받든 알아서 하라'는 내용의 메시지를 보냈다.
A 교사는 몸부터 고장이 나기 시작했다. 피로나 스트레스로 인한 면역력 저하 등의 이유로 왼쪽 겨드랑이에 커다란 종기가 났다. 이달 4일 도내 한 병원에서 종기 제거 수술을 받았고 학교 창고에서 숨진 채 발견되기 전날인 21일까지 모두 9차례 걸쳐 소독 등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A 교사 분향소. 고상현 기자과도한 업무와 학생가족 민원을 홀로 감당했던 A 교사는 몸과 마음이 쇠약해진 상태였다. 지난 19일 학교에 찾아오겠다는 학생가족을 며칠째 기다리다 결국 22일 숨진 채 발견됐다.
한편 경찰은 현재 동부경찰서장을 중심으로 형사 등 12명을 투입한 전담팀을 꾸려 수사하고 있다. 학생 가족의 휴대전화와 A 교사의 휴대전화, 노트북 등에 대해서 디지털 포렌식 작업을 벌이고 있다. 이를 통해 A 교사가 사망에 이르기까지 협박 또는 괴롭힘이 있었는지 확인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