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 안 첫 사전심의부터 파행. 김종민 4.3평화재단 이사장이 회의장을 빠져나오고 있다. 고상현 기자나랏돈 28억 원이 투입된 정부 차원의 제주4·3추가진상조사. 보고서 초안에 대한 사전심의 회의가 1년 8개월 만에 처음으로 열렸지만 시작부터 파행을 겪었다. 그동안 사전심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공정성 시비가 있는 사람이 위원으로 참석하는 등 절차적 문제가 지적돼서다.
◇1년 8개월 만에 열린 사전심의 파행 행정안전부 과거사지원업무지원단 제주4·3사건처리과는 22일 제주시 4·3평화기념관에서 제7차 4·3중앙위원회 추가진상조사 분과위원회의를 열었다. 2023년 11월 제6차 분과위원회의 이후 1년 8개월 만에 이뤄졌다. 회의는 오후 2시 30분부터 5시 30분까지 3시간 동안 비공개로 진행됐다.
정부 보고서의 공신력을 확보하기 위해 사전심의를 담당하는 추가진상조사 분과위원회는 당초 위원이 7명이었으나, 이달 들어 이 중 3명의 2년 임기가 끝나 회의에는 4명만 참석했다.
이날 조사기한 마지막 날인 지난달 30일 조사를 맡은 4·3평화재단이 정부에 제출한 '4·3추가진상조사 보고서 초안에 대한 사전심의'가 안건으로 올랐다. 하지만 일부 위원들이 거부하며 심의가 이뤄지지 못했다. 절차적 하자가 있기 때문에 보고서 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위원들이 주로 지적한 문제는 2023년 11월 제6차 분과위원회의에서 4·3평화재단 측이 약속한 일정대로 사전심의 절차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은 점이다. 아울러 조사를 진행한 평화재단의 이사장과 조사연구원의 남편이 심의위원이라 이날 회의가 규정위반 소지가 있다는 문제도 지적됐다.
제7차 분과위원회의 모습. 고상현 기자해명 과정에서 일부 위원의 고성이 회의장 밖까지 들리기도 했다. 4·3평화재단 측에서 약속한 일정대로 사전심의 절차가 제대로 진행되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 사과하면서도 "조사 내용이 마음에 안 들어서 잘 하려다 보니 (사전심의 절차가) 늦어졌다"고 하는 둥 변명으로 일관한 탓이다.
규정상 제척 사유에 해당하는 사람이 위원으로 있어 회의가 성립될 수 없다는 지적에 대해 행안부 관계자는 문제없다고 했다가 갑론을박이 이어지자 법제처에 유권해석을 받기로 했다.
◇검토위 구성?…위법 확인되면 원천 무효 이날 앞으로 추가진상조사 보고서 초안을 검토할 전문가 자문위원회도 구성하기로 합의했다.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조사를 진행한 4·3평화재단이 아닌 4·3유족회 등 외부 기관에서 추천한 교수 등이 속한 검토위원회를 꾸려 매달 1회 이상 회의를 열고 분과위에 보고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이런 합의 자체가 무효가 될 가능성도 있다. 제척 사유에 해당하는 위원이 속해 절차적 하자가 있다는 법제처 유권해석 결과가 나오면 회의 자체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4·3특별법 시행령상 추가진상조사 분과위원은 위원장을 포함해 4명 이상 9명 이하의 위원으로 구성된다. 회의를 개회하려면 재적 분과위원 과반이 참석해야 한다. 특히 위원 제척·기피·회피 사유로 '위원 또는 그 배우자나 배우자였던 사람이 해당 안건의 당사자인 경우'로 명시하고 있다.
이번 회의에 위원 4명이 참석했지만, 재단에서 진행한 조사 결과물에 대해서 사전심의를 해야 하는 위원 절반이 심의 대상자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사람이라 공정성 시비가 얽혀 있다.
회의가 끝난 뒤 양윤경 위원이 설명하고 있다. 고상현 기자분과위원인 양윤경 전 4·3유족회장은 "향후 법제처 유권해석 결과 규정을 위반해 이뤄진 회의라는 게 확인되면 오늘 논의한 결과도 원천 무효라는 사실을 다 같이 공유했다. 현재까지 보고서 초안에 대해 인정하지 않는다. 절차적 하자가 없어야만 비로소 사전심의를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덕수 전 국무총리는 올해 4·3추념식에서 "첫 4·3진상조사의 부족한 부분에 대한 추가진상조사를 올해 안에 마무리하겠다"고 공언했다. 보고서 초안에 대한 첫 사전심의 회의부터 규정과 절차 위반 등 각종 논란에 파행을 겪으면서 정부 약속이 공염불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한편 4·3추가진상조사는 2021년 3월 전부 개정된 4·3특별법에 따라 이뤄졌다. 2003년 확정된 정부 4·3보고서에서 다루지 못한 내용과 새롭게 발굴된 자료로 재조사가 필요해서다. 조사 대상은 △4·3 당시 미군정의 역할 △재일제주인 피해실태 △연좌제 피해실태 등 모두 6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