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이초 사건'과 판박이…숨진 교사는 보호받지 못했다

'서이초 사건'과 판박이…숨진 교사는 보호받지 못했다

악성민원에 시달리다 숨진 중학교 교사
아침 밤 가리지 않고 전화걸고 민원 제기
학교 민원대응팀 있었지만 '유명무실'
'교원 안심번호 서비스'도 받지 못해
"현 교권 보호 제도 재점검 필요" 지적

도교육청에 마련된 A 교사 분향소. 고상현 기자도교육청에 마련된 A 교사 분향소. 고상현 기자
제주 모 중학교 교사 사망사건은 재작년 '서울 서이초 교사 사망사건'과 유사하다. 학생가족 민원에 시달리다 교사가 학교에서 안타까운 생을 마감해서다. 서이초 사건 이후 교사 개인이 악성 민원에 시달리지 않도록 제도 개선이 이뤄졌지만, 이번 사건에서는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다.
 
◇학교 민원대응팀 있지만…보호 못 받아
 
재작년 7월 서울 서이초 교사 사망사건 이후 교육부는 교권보호 종합대책을 내놨다. 이후 국회는 교사의 정당한 교육 활동을 보호하기 위한 '교권회복 5법'을 통과시켰다. 교육기본법과 초·중등교육법, 유아교육법, 교원지위법, 아동학대처벌법 등의 개정이 이뤄져 지난해부터 시행됐다.
 
대표적인 제도가 '학교 민원대응팀'이다. 학교마다 교장과 교감, 행정실장 등으로 꾸려진 민원대응팀을 운영하는 것이다. 학교 자체적으로 해결이 어려운 민원은 교육지원청 통합민원팀으로 이관한다. 아울러 악성민원은 교권보호위원회와 연계해 공익적인 차원에서 엄정 대응하는 내용이다.
 
특히 학교 민원대응팀은 교사 개인이 악성민원에 노출되지 않도록 하는 게 핵심이다. 하지만 지난 22일 학교 창고에서 숨진 교사는 오롯이 혼자서 학생가족 민원을 감당해야 했다.
 
도교육청에서 각 학교에 보낸 학교 민원대응팀 공문. 필수 협조 사항으로 '교사 개인이 악성민원 등에 노출되지 않도록 한다'고 나와 있다. 고상현 기자도교육청에서 각 학교에 보낸 학교 민원대응팀 공문. 필수 협조 사항으로 '교사 개인이 악성민원 등에 노출되지 않도록 한다'고 나와 있다. 고상현 기자유족을 통해서 확인한 통화기록을 보면 중학교 3학년 담임이자 부장이었던 A 교사는 한 학생이 무단결석하고 흡연하는 문제로 생활지도를 한 이후 학생 가족의 괴롭힘이 시작됐다. 올해 3월 5일부터 이달 중순까지 학생 가족이 직접적으로 A 교사에게 수시로 전화해 항의한 것이다.
 
A 교사가 근무한 중학교에 학교 차원의 민원대응팀이 꾸려지고, 도내 각 교육지원청과 도교육청에 통합민원팀이 생겼지만, A 교사가 사망에 이르기까지 어떠한 보호도 받지 못했다.
 
◇오롯이 혼자 민원 감당…"제도점검 필요"
 
특히 제주도교육청은 서이초 교사 사망사건 이후 별도로 '교원 안심번호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다. 신청한 교사에 한해 자신의 번호를 노출하지 않고 원하는 시간대에 학생과 학부모 등과 전화 또는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 역시 교권 보호 제도의 일환이다.
 
하지만 숨진 A 교사는 이 서비스 혜택을 누리지 못했다. 도교육청은 취재진에게 전 교사에게 서비스 신청을 안내했지만, A 교사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신청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교권회복 5법 개정으로 시행된 제도 중에는 교권침해 직통번호 1395가 개통된 것도 있다. 교권침해 직통번호 1395는 교원 누구나 전국 어디든 교육활동 침해 사안 신고와 심리상담과 법률지원을 안내받을 수 있도록 한 서비스다. 하지만 A 교사는 1395에도 피해 호소조차 못했다.
 
A 교사 아내가 보여준 민원 전화 통화기록. 고상현 기자 A 교사 아내가 보여준 민원 전화 통화기록. 고상현 기자 A 교사 아내는 취재진과 만나 "남편이 혼자서 오롯이 학생 가족의 민원을 감당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어떤 보호도 받지 못한 채 혼자 끙끙 앓다 하늘나라로 떠났다"며 오열했다.
 
한정우 제주교사노동조합 위원장은 "서이초 교사 사망사건 이후 제도 개선이 이뤄졌다고 하지만, 이번 사건에서 보듯 교권보호 제도가 유명무실하다. 도교육청 차원의 진상조사가 필요하다. 이후 제도의 맹점은 없는지 점검해서 다시는 이런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으면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 또는 SNS상담 '마들랜'에서 24시간 전문가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추천기사

스페셜 그룹

제주 많이본 뉴스

중앙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