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도항선 장애인 선원 괴롭힘 의혹…선장 "모두 거짓말"

제주 도항선 장애인 선원 괴롭힘 의혹…선장 "모두 거짓말"

피해자, 폭언에 물품 갈취 등 주장
선장 "선원 괴롭힌 사실 없다"
해양수산관리단, 선내 괴롭힘 인정
경찰, 식비 미지급 혐의만 송치

A씨가 괴롭힘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고상현 기자A씨가 괴롭힘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고상현 기자
"팔푼이 새끼라고 하는데 모멸감이 들어서 견딜 수가 없었어요."
 
2일 제주시 한 주택에서 만난 A(69)씨가 울먹거리며 말했다. 청각장애 5급인 A씨는 듣는 데 큰 불편함은 없지만, 취재진의 질문에 귀 기울여듣고 간신히 말을 이었다. A씨는 제주도와 부속섬을 오가는 도항선에서 9개월간 기관장으로 일하며 선장으로부터 모진 괴롭힘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욕설에 물품 갈취…매일 죽고 싶었다" 
 
A씨는 과거 갈치잡이 어선을 타다 사고로 다쳐 청각장애가 있다. 홀로 기초연금으로 어렵게 생활해왔다. 모 해운회사 대표이자 도항선 선장인 B씨가 함께 일하자고 부탁하자 2023년 6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도항선 기관장으로 일했다. A씨는 이 기간 "매일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했다.
 
하루 4차례 제주도와 부속섬을 오가는 48톤급 도항선에는 기관장인 A씨와 선장 B씨, 항해사 C씨 등 선원 3명이 탔다. 매일 평균적으로 승객 90여 명이 도항선에 올라 부속섬을 오갔다.
 
선장인 B씨는 승객이 있든 없든 수시로 A씨에게 "팔푼이 같은 새끼" "이 멍청한 새끼야" "내 말 안 들으면 자른다" "돈 벌게 해주는데 인정도 모르는 새끼" "또라이 같은 놈"이라며 폭언했다고 A씨는 주장하고 있다. 갖은 폭언에 A씨는 휴대전화 연락처에 B씨를 '욕쟁이'라고 저장했다고 한다.
 
선장 B씨가 갈치젓 가져오라고 한 SNS 메시지 내용 캡처. A씨 제공선장 B씨가 갈치젓 가져오라고 한 SNS 메시지 내용 캡처. A씨 제공특히 휴게시간인데도 A씨에게 도항선 사무실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고 밖에서 배를 지키게끔 했다는 의혹이다. 이 때문에 A씨는 무더운 여름날에는 땡볕에, 추운 겨울날에는 맹추위에 시달려야 했다고 한다. '배에 화장실도 없어서 A씨는 길 위에서 볼일을 봤다'고 주민들의 증언도 나온다.
 
B씨는 또 A씨에게 돈도 주지 않고 카펫과 점프선, 카세트테이프 등 배에 사용할 물품을 사오라고 하거나 자신이 먹을 갈치젓갈 등을 사오라고 지시했다는 주장이다. 재작년 9월 장애인 협회에서 A씨에게 무상으로 지원해준 42인치 텔레비전도 가져오라고 해서 빼앗았다고 A씨는 토로한다.
 
◇"기상 악화로 운항 중단돼도 노예 노동"
 
A씨는 근무 기간 매일 오전 7시 30분까지 출근해서 오후 4시 30분까지 일을 했다고 한다. 사실상 휴게시간에도 제대로 쉬지 않고 배 옆을 지켰기 때문에 점심시간도 제대로 갖지 못한 채 주 7일 매일 9시간씩 일을 해왔다는 주장이다. 근로기준법상 '주 52시간'을 훌쩍 넘는 근무 시간인 것이다.
 
집에서 항구까지 38㎞ 거리를 A씨는 매일 출퇴근했다. 선장 B씨가 '하루 쉬면 20만 원, 이틀 쉬면 50만 원을 임금에서 빼겠다'고 엄포를 놔 A씨는 몸이 아파도 출근해야 했다고 한다. 
 
A씨의 고된 노동은 기상 악화로 배 운항이 중단돼도 이어졌다고 한다. 통상 기상 악화로 배 운항이 중단되면 선박 안전을 확인하고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퇴근한다. 하지만 A씨는 기상악화로 배 운항이 중단된 49일간 배 녹을 제거하고 페인트칠을 하는 등 기관장 업무가 아닌 일을 했다는 주장이다.
 
B씨 지시로 이뤄진 페인트칠 모습. A씨 제공B씨 지시로 이뤄진 페인트칠 모습. A씨 제공특히 B씨는 A씨에게 5개월 동안 계약서상 제공하기로 한 식비를 주지 않은 의혹도 있다. 이 때문에 A씨는 집에서 가져온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거나 굶는 일도 많았다고 주장했다.
 
보통 기관장은 배의 기계와 전기설비 운전과 보수관리 업무만 하면 된다. 하지만 B씨는 A씨에게 기관장 업무와는 상관없는 배 청소와 녹 제거, 페인트칠을 홀로 시켰다고 한다. 더욱이 작업복과 고글 등 안전장비도 제대로 주지 않고 일을 시켜 A씨는 버린 옷만 수십 벌이 된다고 토로했다. 
 
급기야 재작년 여름 A씨가 안전장비 없이 배에서 녹을 제거하다 쇠가 오른쪽 눈에 박혀 크게 다쳤다. 이마저도 "쉬면 수십만 원을 임금에서 빼겠다"고 해 치료도 제대로 못 받고 일했다. 
 
◇선장 "A씨 괴롭힌 적 없어…모두 거짓말"
 
지속적인 괴롭힘을 호소한 A씨는 현재까지도 도내 모 병원에서 정신과 치료받고 있다. 진단서에는 '직장생활에서 겪은 힘든 일로 인한 우울감 등으로 약물과 상담 치료 중'이라고 나왔다.
 
선장의 괴롭힘을 오랫동안 지켜봤다는 해운회사 주주와 주민 7명이 장애인권익옹호기관에 "선장이 A씨를 장애인이란 이유로 조롱하며 학대하고, 의무에 없는 일을 시키는 것을 자주 목격했다. 괴롭힘과 노예 노동은 다시는 발생하지 말아야 한다"며 '장애인 학대' 진정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주주와 주민들의 도움으로 부산지방해양수산청 제주해양수산관리단에 신고가 이뤄져 지난달 선내 괴롭힘 사실이 인정됐다. 아울러 제주해양수산관리단은 B씨와 해운회사 측에 선내 괴롭힘 재발방지를 위한 개선방안 마련과 예방교육 실시 등 개선지도와 함께 선원법에 따라 과태료를 부과했다.
 
우울장애 진단서. A씨 제공우울장애 진단서. A씨 제공경찰도 장애인복지법 위반과 선원법 위반, 근로복지법 위반 혐의로 수사를 해왔으나 식비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은 혐의만 유죄로 보고 검찰에 송치했다. 나머지 혐의는 모두 증거 불충분으로 불송치됐다. A씨는 이에 불복해 장애인권익옹호기관 도움을 얻어 경찰에 이의신청 할 예정이다.
 
선장 B씨는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20년간 알고지낸 A씨가 힘들게 살고 있는 것 같아서 생활에 도움을 주고자 기관장 일을 맡긴 것이다. 배에서 A씨에게 폭언을 하는 등 괴롭힌 사실이 없다. 사무실 화장실을 못 사용하게 했다는 것도 거짓말"이라며 모든 의혹이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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