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원재 집사 "성경속에서 심리학을 재발견했어요"

장원재 집사 "성경속에서 심리학을 재발견했어요"

핵심요약

삶이 아름다운 크리스천을 만나는 시간, 로드인터뷰 사람꽃. 오늘은 제주성안교회 장원재 안수집사를 제주CBS 김영미 PD가 만나봅니다.

<로드인터뷰_사람꽃> 제주성안교회 장원재 안수집사
논문 주제인 '자기 조절'을 넘어 '자기 부인'을 통한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
Farmer's Cafe 세미양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공간으로 쓰임 받길

부부학교에서 대상자들에게 안내사항을 전하고 있는 장원재 안수집사. 본인 제공.부부학교에서 대상자들에게 안내사항을 전하고 있는 장원재 안수집사. 본인 제공.■ 방송 : CBS 라디오 <로드인터뷰_사람꽃> FM 제주시 93.3MHz, 서귀포 90.9MHz
■ 방송일시 : 2025년 4월 19일 26일(토) 오후 5시 30분
■ 대담자  : 제주성안교회 장원재 안수집사(베이커리카페 세미양 대표)

◆김영미> 집사님은 제주에서 고등학교까지 나오고 해군사관학교로 진학을 했죠.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장원재> 아버지의 고향이 황해도입니다. 아버지께서는 제주를 제2의 고향 삼아 사시다가 돌아가셨는데요. 당시 아버지의 권유가 있었고, 아무래도 해군이셨던 아버지의 영향이 많지 않았나 싶습니다.

◆김영미> 군에 갈 때까지도 신앙은 없었다고 들었습니다.

◇장원재> 저희 할머니는 가톨릭 신자였고, 아버지도 성당을 다니긴 하셨는데요. 하지만 저는 신앙이 없었습니다. 교회를 나가기 시작한 건 2002년부터입니다. 그러니까 한 23년 정도 됐네요. 그 당시 계룡대에 있는 해군본부에서 소령으로 근무하면서 처음 신앙생활을 하게 됐습니다.

 ◆김영미> 계기가 있었습니까.

◇장원재> 군에서 소령이라면 일을 굉장히 많이 해야 하는 시기입니다. 야근도 매일 하다시피 하고 심지어는 퇴근을 못해서 일주일 동안 집에 못 간 적도 있어요. 그래서 너무 힘들어 전역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때였는데요.
 
그러다가 영화인가 드라마인가에서 본 것처럼 교회에 나가면 뭔가가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에 집 근처 교회에 무작정 나갔습니다. 당시 아는 지인으로부터 교회에는 새벽예배라는 게 있다는 얘기를 들었거든요. 성경책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이 그냥 몸만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게 됐는데, '설교 말씀이 참 좋다' 하는 생각과 더불어 기도하면서 내 마음을 누군가에게 털어놓을 수 있다는 것에 눈물을 많이 흘리며 위로가 됐던 것 같습니다. 정말 그때의 감동이랄까, 감격은 제 인생에서 결코 잊을 수 없는,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김영미> 전역을 조금 일찍 하셨죠.

◇장원재> 군 생활이 어렵고 너무 힘들다 보니까 제 삶에서 좋지 못한 모습들이 보이더라고요. 당시 저는 놀기도 좋아하고 사람들과 만나는 것을 좋아해서 술자리도 많이 갖게 됐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제 인생이 궤도를 벗어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일찍 전역하게 된 것 역시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것 같고요. 제 삶에서 바람직하지 못한 모습들을 하나님께서 만져주시는 과정을 통해 전역도, 저의 진로도 하나님께서 인도하셨다고 생각합니다.  

◆김영미> 전역하면 뭘 해야 할지, 고민이 있지 않았나요.

◇장원재> 제가 전역하기 몇 년 전부터 심리학을 공부했어요. 전역을 결심하면서 석사과정을 마치게 됐습니다. 하지만 생계를 꾸려야 하기에 다른 쪽으로도 자리를 알아보고 있었습니다. 국방부에는 전역자를 위해 이력서를 포털에 올릴 수 있도록 돼 있는데요. 헤드헌터 쪽에서 제 이력서를 보고 연락이 왔어요. 지금도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만한 미국의 대기업에 지원해보지 않겠냐고 제안을 해서 평소 해외마케팅을 해보고 싶던 꿈도 갖고 있던 터라 알겠다고 했죠. 아마도 제가 일본어를 전공했고 군에서 통역을 했던 경력이 있어서 그런지 그런 점을 보고 제안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래서 저는 전역을 하고 나서 '아, 내 인생이 너무 잘 풀린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이어지는 면접에, 면접을 거듭하면서 한 명을 뽑는 자리에 제가 남게 됐는데요. 그래서 '아, 이제 됐구나'하고 생각했죠. 그런데 그 후 4개월이 지나도 회사 측에서 답이 없었습니다. 좋은 소식이 있을 거라는 헤드헌터의 얘기만 믿고 기다리던 중에 연말쯤 돼서 연락이 왔어요. 회사에서 그해에는 인원을 뽑지 않게 됐다는 연락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매일 아침 새벽예배 나가서 하나님께 감사기도 드리고 군에서 전역해서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다는 기대감으로 한껏 부풀어 있었는데, 그렇게 되니까 너무 낙담하게 되더라고요. 아내도 많이 실망을 했죠. 하지만 그렇게 되면서 제게는 다른 선택이 없었어요. 그 당시 제가 전역하기 전 지도교수이셨던 교수님이 박사과정을 하면 좋겠다고 하셔서 박사과정을 이어가게 됐습니다.

◆김영미> 그래서 박사과정을 하게 된 거군요.  
 
◇장원재> 당시 제가 대전에 살 때인데, 일주일에 2박 3일씩 서울로 다니면서 공부를 했고 과정을 마치게 됐습니다. 그리고 지도교수님 추천으로 강의도 나가게 됐어요. 강의라는 게 한번 시작하면 또 요청이 들어와요. 재밌는 시간이었지만 이상하게도 제겐 여전히 채워지지 않은 것들이 있었어요. 어떻게 하면 좀 더 나은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돈도 많이 벌고 인정도 받는, 뭐 그런 것들을 많이 찾았던 것 같습니다.

◆김영미> 그래서 찾으셨나요.

◇장원재> 제가 2013년 박사 과정을 수료하던 해에 학교에서 해외에 있는 대학을 탐방할 수 있는 기회를 줬습니다. 그래서 당시 미국 시애틀, 그리고 포틀랜드 쪽 두 군데를 3주에 걸쳐서 탐방을 하게 됐는데요. 한 군데는 생태심리를 전공하는 곳이고 한 곳은 성경적 심리학을 하는 곳이었습니다. 그 대학들을 탐방하고 나서 그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그런데, 그 후 논문을 쓰기 위해 고향 제주로 오고 나서 2014년부터 카페 사업을 하게 됩니다. 고향에 논문 쓰러 왔다가 카페 사업을 시작하게 된 거죠. 지금 생각해 보면 그냥 학업을 이어갔으면 좋았을 텐데, 여전히 세상적으로 성공하고 싶은 마음에 무모하게 카페 사업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처음엔 그 사업이 좀 잘 됐습니다. 그래서 전 제가 사업의 귀재인 줄 알았어요. 하지만 이후 세월호 사고가 있었고, 사드 이슈가 번지면서 제주를 방문하는 관광객 수가 급감하게 되면서 큰 타격을 받게 됐습니다. 그래서 7년 넘게 사업을 했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어요. 어떻게 보면 제 적성이나 제가 잘하는 분야가 아닌 곳에서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냈던 것 같아요.

세미양 카페에서 보이는 한라산. 장원재 안수집사 제공.세미양 카페에서 보이는 한라산. 장원재 안수집사 제공.
◆김영미> 그 이후에 논문을 다시 쓰게 된 건가요.

◇장원재> 2020년까지 카페를 했는데요. 정리를 하고 나니까 정신이 번쩍 들더라고요. 그래서 그동안 미뤄왔던 일들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번역을 하고 있던 심리학 서적의 번역을 마쳤고 박사 논문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근데, 제 논문주제가 인간의 자기 조절에 관한 내용이었는데요. 그 논문을 쓰고 나서 홀가분한 마음이 들어야 하는데, 이상하게 많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보통 인간의 자기 조절이라고 하면 인간이 자신의 삶에서 보다 적응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자기(self)를 조절하거나 통제하는 것들을 의미하거든요.

그런데 제게 든 생각은 '나를 포함한 우리 인간은 참으로 보잘 것 없구나. 어떻게 보면 구제불능인 존재가 맞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왜 이렇게 마음이 채워지지 않을까 하는 답답함이 있었는데, 기도 가운데 하나님께서 마태복음 16장 24절의 말씀을 주셨어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올 것이니라'라는 말씀 말입니다. 거기서 저는 자기(self)를 부인하라는 말씀에 완전히 뒤집어졌습니다. 자기 조절에 대해 논문을 썼는데,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자기 조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새로운 나로 거듭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었죠. 그리고 십자가를 지고 따라올 것이라는 말씀은 사도 바울이 말했던 것처럼 옛사람과 새 사람, 이전의 나는 죽었고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만 사는 자만이 하나님께서 지으신 본래의 형상을 회복하는 길이라는 걸 깨닫게 됐어요. 그때 저는 제 남은 인생이 어떻게 될 것 같다라는 걸 조금 느낄 수 있었어요. 그냥 느낌으로 알 수 있었어요. 그러면서 과연 내가 어떤 일을 하며 사는 게 하나님께서 기뻐하실까 그런 걸 계속 생각하게 됐습니다.

◆김영미> 어려운 시기에 진정한 나를 돌아볼 시간을 주셨네요.

◇장원재> 군에서 참 재미있는 일화가 있었어요. 제가 술을 즐겨 마셨다고 했잖아요. 진해라는 곳에서 근무할 때였는데요. 당시 24시간 근무하는, 어떻게 보면 진급이 어느 정도 보장된 자리였는데, 그 해 진급에서 누락이 됐어요. 제 안에 교만함이 있었나 봐요. 저는 당연히 진급할 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상실감에 방황도 많이 했습니다. 그때 앞으로는 절대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결심을 했었지만, 여전히 저는 기회가 되면 술에 제 영혼을 의지하고 있더라고요.
 
그러다가 어느 날 주일이었어요. 어딜 가다가 눈앞에 보이는 교회로 그냥 들어갔어요. 근데, 그곳에서는 마침 유명한 찬양 사역자를 초대해서 집회를 하고 있는 거예요. 뒷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는데, 갑자기 울음이 터지더라고요. 주변에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어서 더 마음 놓고 막 울었던 것 같아요. 억울함과 좌절, 이런 것들이 제게 한꺼번에 밀려왔어요.

그래서 한참을 울다가 집회 끝나고 밖으로 나왔는데, 이상하게 너무 하늘이 맑은 거예요. 하늘을 쳐다보는데, 맑은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이 움직이면서 뭔가 말을 하는 것 같은 겁니다. 그런데, 그때 하나님께서 '아들아, 너는 왜 내가 싫어하는 걸 계속하니' 이런 말씀을 주시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저는 짧은 순간에 '하나님, 그러면 하나님께서 제 인생 책임지시나요' 했더니 얼마 안 가, 하나님의 '내가 책임진다'는 말씀이 들렸습니다. 한 세 번 정도를 저와 하나님이 묻고 답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그러시다면 앞으로 저는 술을 한 방울도 마시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제 인생을 책임지십시오. 만약 제가 그걸 어기면 저를 그냥 데려가십시오'라고 하나님께 서원을 드렸습니다. 그러고 나서 이후로 20년 넘게 술을 한 방울도 마시지 않았습니다.

카페 2층에서 아내와 함께. 장원재 안수집사 제공.카페 2층에서 아내와 함께. 장원재 안수집사 제공.
◆김영미> 진짜로 변하셨나요.
 
◇장원재> 그 이후로는 전혀 술을 입에 안 댔고요. 진급 대상자에게 따라주는 술도 거절할 정도로 철저히 지켰습니다. 어느 날 상관인 소장님이 여러 진급대상자한테 따라주는 이른바 '초조주'라는 것을 주셨는데요. 저는 "저는 사이다로 주십시오"라며 거절했습니다. 이후 해군본부에서는 아무도 제게 술을 주는 사람이 없게 됐습니다.
 
하지만 이듬해 정말 하나님의 은혜로 진급을 하게 됐습니다. 당시 제가 섬기던 교회에서 많은 분들이 저를 위해 기도를 해주셨습니다. 그때 새벽기도 나가서 기도하고 하나님께 매달렸는데요. 해군의 입장에선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실제로 이뤄주시는 것을 보면서 정말 소름이 돋을 정도로 놀라게 되었습니다.  

중령으로 진급하고 나서 2년 정도 근무하다가 일종의 사회의 명예퇴직 같은 기회가 있어서 전역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그 이후의 삶도 하나님께서 인도하셨고 지금도 여전히 인도하고 계신다고 생각합니다. 가끔은 '하나님 제가 하나님께 특별히 잘한 게 없는데, 하나님 왜 저에게 이렇게 많은 축복을 주시나요'라며 여쭤보기도 해요. 그러면서 혼자 그런 생각을 합니다. '그때 드린 서원을 여태껏 지키며 살아가려고 하는 저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기쁘게 보시는 게 아닐까' 그렇게 제가 하나님께 서원을 하고 제 삶에서 많은 부분들이 달라지긴 했지만, 창조주 하나님과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건 그 이후인 것 같아요.

◆김영미> 그 얘기를 들려주세요.
 
◇장원재> 제가 논문을 쓰고 나서 인간이라는 존재는 어떻게 보면 구제불능인 존재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제가 전공한 심리학에서는 주로 인간의 부적응적인 측면들을 다루면서 어떻게 하면 적응적으로 나아갈 수 있느냐를 다루고 있지만 결국 제가 깨달은 것은 진정한 심리학이야말로 인간의 죄성과 영성을 다루지 않고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됐어요. 우리가 매일같이 성경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과정, 그리고 거기서 성경이야말로 우리 모든 삶에서 신앙적인 요소뿐만 아니라 제가 전공한 심리학에서도 중심이 돼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말씀, 성경의 말씀을 기준으로 삼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치유 또는 회복의 길로 가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마태복음 16장 24절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저의 부족한 모습, 그동안 제 삶 속에서의 부끄러운 모습, 제가 지었던 수많은 죄,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서 저희 집 안에 걸려 있는 십자가를 이렇게 보고 있는데, 거기서 제가 아닌 예수님이 고난을 당하고 계신 거예요. 십자가를 통해 그 모습을 보고 있는 그 짧은 시간에 '왜 죄 없는 저분이 저기서 고난을 당하시지, 저 자리엔 내가 있어야 되는데, 저 죗값을 내가 받아야 되는데, 왜 죄 없는 예수님이 저기서 고난을 받고 계시지' 하는 생각에 일주일 정도 계속 눈물이 났던 것 같아요. 그런 과정들을 통해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나게 된 것 같습니다.
 
◆김영미> 부부학교를 통해서도 신앙적으로 정착해 갈 수 있었다면서요.

◇장원재> 부부학교는 제 자신의 삶과 부부간의 관계, 그리고 신앙적으로 정착해 가는데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그래서 그 감사함으로 지금도 스텝으로 섬기고 있고요. 제주성안교회의 부부학교는 2015년에 시작했는데요. 지금까지 165쌍, 330명이 그 과정을 수료하셨습니다. 코로나 이전에는 1년에 두 번, 이후로는 1년에 한 번 실시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5월 31일부터 6월 21일까지, 매주 토요일 총 4주에 걸쳐서 진행되게 됩니다. 교인이 아니어도 등록이 가능하고요. 신앙이 없어도 지원할 수 있는데요. 5월 18일까지 온라인 또는 오프라인으로 신청하시면 됩니다. 저는 부부학교야말로 제주에 있는 교계는 물론이고 지역사회에 반드시 필요한 프로그램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어떠한 제한사항도 없습니다. 부부관계의 회복은 물론이고 또 부부공동체 안에서 누리는 기쁨도 큽니다. 저희가 풍성하게 준비를 하고 있고 자녀 돌봄까지 해드리고 있으니까 많은 분들이 함께 하시면 좋겠습니다.

◆김영미> 책을 한 권 번역하셨고, 지금도 다른 책을 번역하고 있죠.

◇장원재> 제가 아직 책을 쓸 정도의 실력이 안 돼서 책을 번역하고 있는데요. 지금 번역하고 있는 책은 성경적 심리학(Biblical Psychology)이라고 미국의 인디아나주에 있는 그레이스 컬리지(Grace College)라는 신학대학교에서 실제 성경적 심리학을 강의하고 계신 교수님의 책입니다. 올해 안에 발간하기 위해 현재 작업 중에 있습니다.
세미양 카페 내부 모습. 장원재 안수집사 제공. 세미양 카페 내부 모습. 장원재 안수집사 제공. 
◆김영미> 이 책 번역을 통해 얘기하고 싶은 게 있습니까?

◇장원재>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 크리스천들이 제일 놓치기 쉬운 게 자기 부인이에요. 우리가 매주 교회 나가고 예배드리면서 신앙생활을 한다곤 하지만 여전히 우리가 죄성의 모습으로 자기를 유지한 채 다른 사람을 정죄하기도 하고 또 교회에서 다른 이들의 모습을 비판하기도 하거든요. 그러니까 자기 본위, 자기중심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렇게 되면 결국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조금씩 멀어지게 되죠. 자기 부인이라는 것에 대해서 좀 더 깊이 생각하고 자기를 부인하다 보면 결국은 그 자기를 부인한 곳에 예수 그리스도가 계셔야만 내가 진정한 구원의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돼요.  

◆김영미> 근데, 지금 우리가 만나고 있는 이 카페는 어떤 곳인가요.

◇장원재> 1973년에 저희 부모님께서 잡목으로 무성한 땅을 구입하셔서 여기를 과수원으로 일군 곳입니다. 두 분이 농사를 지어오셨는데, 제가 제주에 2013년에 귀향을 하고 2014년도부터 이곳에서 농사를 짓기 시작했어요. 당시 제가 농사에 대해서 아는 게 별로 없다 보니까 농사를 제대로 못 지었어요. 그러다 보니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너는 농사도 잘 못 지으니까 그렇게 어렵게 농사만 지으려 하지 말고 이곳을 많은 사람들의 쉼터로 만들면 좋겠다"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저는 그런 아버지의 유지를 따라 카페를 계획하게 됐고 작년 말 이곳 감귤 과수원에 세미양, 즉 '마르지 않는 샘이 솟는 땅'이라는 의미의 베이커리 카페를 열게 되었습니다.  

◆김영미>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됩니까.

◇장원재> 전 사업적으로는 별로 수완이 없는 것 같아요. 제 적성도 아닌 것 같고요. 제가 기도 가운데 하나님께서 저한테 어떤 것을 원하시는지 요즘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조금 전 말씀드린 성경적 심리학 그리고 가정 회복사역 이런 일들을 관련된 활동과 강의활동 등을 통해 해나가려고 합니다. 특히, 이곳 제주에서 그런 관심 있는 분들과 가정 사역, 특히 결혼 예비 학교라든지, 이혼한 가정들을 위한 치유 프로그램 등의 사역을 해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곳 카페는 둘째 아들이 실제 빵도 만들고 매장 운영을 하고 있어요. 아들이 기도하면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으로 잘 운영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기도제목은 저는 제 나름대로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을 품고 나아가겠지만 제 뒤를 이어 군 생활을 하고 있는 큰 아들이 신실하게 하나님을 믿으며 강건하게 군 생활을 잘해줬으면 좋겠고요.

여기 카페 일이 정말 힘들고 물론 매출이 많이 오르면 좋겠지만, 둘째 아들이 매일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붙들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운영하여 이곳이 정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공간으로 사용될 수 있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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