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경 목사. 본인 제공.■ 방송 : CBS 라디오 <로드인터뷰_사람꽃> FM 제주시 93.3MHz, 서귀포 90.9MHz
■ 방송일시 : 2025년 1월 25일, 2월 1일(토) 오후 5시 30분
■ 대담자 : 새미교회 김미경 목사
◆김영미> 저는 지금 제주북초등학교 옆에 있는 새미교회에 와 있습니다. 언제 이곳으로 온 겁니까.
◇김미경> 2024년 1월에 옮겨왔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김영미> 목회자 자녀였다면서요. 어린 시절을 어떻게 보냈는지 궁금합니다.
◇김미경> 전 어렸을 때 별명이 애늙은이였어요. 말을 조심해야 할 것 같아서 일부러 말을 많이 아꼈어요. 사춘기 시절에 아버지가 추자도 신양교회에 계실 때였는데요. 그때 놀러 왔던 친구 중 한 명이 저한테 "너도 네 얘기를 좀 해줘 봐"라고 할 정도로 늘 다른 친구들 얘기를 들어주는 아이였습니다. 흠이 잡히기도 싫었고 늘 시선이 집중돼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김영미> 그런 자신이 답답하진 않았나요.
◇김미경> 그래도 다행인 것은 저를 발산할 기회는 주어졌던 것 같아요. 어렸을 때부터 웅변을 한다든지, 그림을 그린다든지, 활동을 많이 해서 상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회자도 아닌 것이, 괜히 목회자처럼 모범적인 틀 안에서 살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김영미> 제주가 고향이죠.
◇김미경> 유아교육과를 졸업하고 선교원에서 3년 동안 근무할 때까지는 제주도 안에 있었습니다. 목회자인 아버지를 따라다니면서 제주 곳곳이 제 고향이 됐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목사의 딸, 누구의 동생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게 싫어서, 선교원을 마치고 육지로 떠났습니다.
문학에 대한 꿈이 있어서 문학계통의 공부를 더 하고 싶어 제주를 벗어났지만 사실 주님을 조금 멀찍이 따라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베드로처럼. 하지만 뱃속에서부터의 습관이 있어서인지, 멀찍이 서서 가고 싶다고는 했지만 주일 예배를 빠지지는 않게 되더라고요.
◆김영미> 그럼 다시 온전히 주님과 함께 해야겠다는 계기가 있었습니까.
◇김미경> 한마디로 말하면 그건 고난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고난과 아픔 없이 돌이킬 수 있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아요. 남편은 저를 만나고 나서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결혼을 하고 나서도 여전히 교회는 잘 다녔지만 그 삶이 하루아침에 바뀌는 건 아니더라고요. 제가 자란 환경과 너무 다른 환경에서 자란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불협화음이 있을 수밖에 없었죠.
남편의 선한 마음과 양심, 가치관을 믿었기 때문에 별 두려움이나 걱정 없이 결혼했지만 정말 많은 부딪힘이 있었고, 특히 음주운전으로 삼진아웃 판정을 받을 때는 남편에게 더 이상의 어떤 희망도 찾아볼 수 없겠다는 절망감이 절벽처럼 무섭게 다가왔습니다.
그때 '주님 차라리 주님을 위한 고난이라면 제가 얼마든지 달게 받겠습니다'라는 고백을 하게 되더라고요. 제가 한 고백 같지는 않았어요. 그 일이 있기 1년 전에 제가 다니던 교회 목사님께서 신학을 공부해서 전도사로 같이 활동하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하셨는데요.
그 말씀이 한줄기 빛처럼 생각나서 문학 관련 공부가 아니라 한일장신대학교 3학년으로 편입하게 됐고요. 신대원까지 쭉 공부하게 됐습니다. 지금도 가끔 뭔가 편해지고 싶고, 안주하고 싶어지려고 할 때, 그때 했던 고백이 생각나요. '너 주님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고난을 달게 받겠다고 했잖아' 이런 고백과 그때의 생각으로 또 힘을 내게 됩니다.
예배 전 찬양 모습. 김미경 목사 제공.◆김영미> 지금은 남편분이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돕고 있다면서요.
◇김미경> 네 '나름' 열심히 돕고 있습니다. 이 단어를 붙이는 이유는 '하나님 보시기에 정말 도움을 돼야 하는데, 내가 하나님께 기쁨이 되고 있는지, 하나님께서 원하는 길로 가고 있는 게 맞는지'가끔 돌아보게 됩니다. 이런 부분에서는 저와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김영미> 제주에 와서는 바로 개척을 했습니까.
◇김미경> 2009년 12월에 제주로 와서 한림교회 전임 전도사로 사역했는데요. 갑자기 저에게 생각지도 않은 새 생명이 찾아와 한림교회를 사임하게 되면서 개척을 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46살에 가진 늦둥이 딸을 통해 주님이 내 안에, 내가 주님 안에 있음이 어떤 삶인지 몸소 체험하게 됐습니다.
평소 즐겨 마시던 커피, 매콤한 음식을 전혀 못 먹게 됐고요. 인스턴트라든지 조미료 첨가물에 굉장히 예민해졌습니다. 그래서 이런 걸 먹어서 쓰린 속은 우유로 달랬는데요. 나중에 아이를 낳고 보니까 이때 마셨던 우유가 제 치아를 지켜줬더라고요.
아이한테 필요하지 않은 음식은 멀리하게 만드는 일들을 겪으면서 '주님이 내 안에 있다면 정말 주님이 원하는 삶으로 자연스럽게 바뀌어 가는 게 진짜 주님이 내 안에 있는 삶이고 내가 주님 안에 있는 삶이 아닐까' 하는 깨달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김영미> 그럼 늦둥이 아이가 생기면서 개척을 하게 된 건데요. 처음 어디에 개척을 했습니까.
◇김미경> 한림교회를 사임하면서 사택을 나오게 되니까 갑자기 집을 잃게 된 상황이 됐어요. 그래서 가장 저렴한 집을 찾아가다 월산 마을을 알게 됐습니다. 하지만 월산 마을은 새로 이사 오는 분들과 그 지역 주민들 간의 갈등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 갈등을 보면서 이분들이 하나가 되고 진정한 화해를 이룰 수 있는 게 뭘까 고민하게 됐고요.
바로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 밖에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녹일 수밖에 없겠다는 마음으로 계속 지켜보다가 이곳에 개척할 마음을 주셔서 카페 교회로 개척을 하게 됐습니다.
카페 교회라서 묵상 나눔도 하고 수다도 떨면서 교회 주변의 분들하고도 서로 왕래하며 잘 지냈습니다. 하지만 우리 성도님들한테는 아쉬움이 있는 공간이었더라고요. 이웃들에게는 좋은 공간이고 나눔의 장도 되지만 정작 뭔가 간절히 기도하고 싶을 때 기도의 공간, 예배의 공간으로는 부족함이 있었던 거죠. 그래서 교회 이전의 마음을 품게 됐습니다.
혼디모다정 캠프 모습. 김미경 목사 제공. ◆김영미> 교회 구하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요.
◇김미경> 그렇죠. 마음에 드는 건물 찾는 것도 힘들고, 막상 교회로 사용한다고 하면 거절당하기 일쑤였죠. 그런데 어느 날, 총회의 교정선교부에서 서울로 한번 올라오라는 요청을 해서, 올라간 김에 아들 얼굴도 보고 내려오는데, 아들한테서 잘 도착했냐는 전화가 왔어요.
정신을 차려보니까 제가 깜빡 졸아서 김포공항역을 지나쳐 인천공항으로 가고 있더라고요. 많이 되돌아갔지만, 5분 정도 늦었어요. 그 정도면 제가 들어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직원이 정말 AI처럼 표정 변화 하나 없이 기계처럼 안된다고 딱 잘라 말하더라고요. 저는 그 순간 기분 나쁜 게 아니라 이분이 하나님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실 제가 늦은 거지, 비행기가 원래 시간보다 먼저 떠난 게 아니잖아요. '하나님 같구나, 하나님도 하나님의 시간에, 하나님의 방법에 맞춰서 하나님의 일을 하고 계신데, 나만 안달복달하면서 내가 원하는 대로만 응답해 달라고 기도했었구나'하는 사실이 확 와닿았어요.
사실 제가 교회 이전과 관련해서, 어디로 이전해야 할지 빨리 보여주세요, 알려주세요, 찾게 해 주세요. 간절하게 기도만 했지, 놓친 게 있다는 걸 몰랐던 거죠. 그 자리에서 제가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이 들려주시는 음성 가운데 놓친 게 있다면 깨닫게 해 주세요"
그때 교정사역을 함께 하는 권사님께서 고마로 쪽에 있는 안디옥교회가 다른 곳으로 이전해 간다는 소식을 알려줬던 게 생각이 나더라고요. 그래서 바로 다음날 교회를 찾아갔습니다. 그렇게 고마로로 옮기게 됐습니다.
◆김영미> 그럼 이후에 지금의 자리에 오기까지 고민은 없었습니까.
◇김미경> 월산마을의 카페 교회는 기도와 예배의 장소로는 조금 부족함이 있어서 그 필요를 찾아서 간 곳이 고마로였습니다. 그곳으로 옮겨서 비로소 금요기도회도 시작하고 예배도 정상화 됐는데요. 하지만 고마로의 교회가 3층이고 주변이 유흥가라 전도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또 초등학교 5학년인 딸이 있어서 초등학교 옆으로 이전하고 싶다는 소망도 있었는데요.
마침 제주산성교회였던 이곳에 자리가 나서 옮기게 됐습니다. 그리고 혼디모다정이라는 연합캠프가 있었는데요. 캠프 공간을 구하기가 해마다 힘들어서 더 넓은 곳으로 이전해 가면 우리 교회에서 캠프하게 해달라고 기도했었는데, 그 기도의 응답이 되어 이곳에서 벌써 세 번의 '혼디모다정 작은 교회 연합 캠프'를 하게 됐습니다.
수요일 행복 나눔 잔치 무료 식사 모습. 김미경 목사 제공. ◆김영미> 이곳으로 옮겨오면서 노숙하는 분들을 위한 무료급식도 한다면서요.
◇김미경> 사실 혼디모다정 캠프에서 처음 듣게 된 얘기였습니다. 동문시장 맞은편에서 토요일에 무료급식을 하는데, 가까운 곳에 이전해 왔으니까 함께 가보지 않겠냐는 권면이 있었고, 바로 가서 찬양하고 배식하고 기도하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노숙하는 분들이 많은데, 비가 오면 비를 맞으면서 거리에 서서 돌담에 밥을 얹고 식사를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이왕이면 좀 더 아늑한 곳에서 자리에 앉아서 식사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요.
노숙인 분들을 위해 저희 교회에서 매주 수요일 오전 11시 40분에 예배를 드리고 식사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또 별 기대 없이 일요일에도 오시면 예배드리고 무료 식사가 가능하다고 하니까, 수요예배에 오시는 대부분이 주일 예배에 나오셔서 갑자기 당황스럽긴 했지만 기쁨은 배가 되었습니다.
◆김영미> 이런 나눔을 통해 변화가 된 분도 있다면서요.
◇김미경> 우울증세를 보이던 노숙인이 있었는데요. 피아노를 치면 우울증을 극복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얘기를 듣고 제가 교회 피아노를 마음껏 치라고 허락해 줬습니다. 그분은 피아노를 잘 치는 분도 아닌데, 밤새 연습하시더니 어느 날부터 수요일 '행복 나눔 잔치'때 반주를 하게 되는 역사가 있게 하셨습니다.
◆김영미> 소망이 있다면 나눠주세요
◇김미경> 주님은 저에게 교회 개척을 시작하면서부터 지금까지, 낮은 곳을 향한 하나님의 시선과 사랑을 일깨워주셨습니다. 물이 밑에서부터 끓어오르듯이 낮은 곳에서부터 사랑이 끓어올라서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믿음의 불길이 제주 전체에 활활 타오르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