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이 숲을 만나다] (2) 버려진 땅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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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이 숲을 만나다] (2) 버려진 땅 이야기

<환상숲 곶자왈 이야기>
숲은 생각을 한다
숲과 말씀의 이야기는 모두 나의 이야기
생명의 보고로 주목받는 버려진 땅 '곶자왈

                    저청중앙교회  이후재목사

저청중앙교회 이후재목사
숲은 이상한 곳이다. 알 것 같은데 알 수 없는 것이 숲이다.

'에두아드로 콘'이라는 인류학자는 ‘숲은 생각 한다’고 주장한다. 사고란 인간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는데, 숲이 생각을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인간이 언어로 사고를 하지만, '에두아드로 콘'에게 인간의 언어 표상은 세상 모든 생명체들과 공유하는 기호의 일부 일 뿐이다. 사고는 더 이상 인간의 전유물이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숲도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숲은 인간의 언어가 아닌 다른 기호로 우리에게 말을 걸어온다.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 콩짜개 잎들이 자라는 소리, 송학 줄기들이 나무를 타고 올라가는 소리, 고사리 잎들이 흔드는 소리, 숲이 들려주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그 소리가 들리는듯하다.

이런 숲에 한 참 머물면 경이로움에 젖어든다.

처음에는 낯설지만 이내 거대한 품이 되어 다가온다. 그래서 숲에 서면 '작아지는 나'를 만나게 된다. 넘어서기 어려운 존재와 마주하는 느낌이다. 그러나 넘어 서면 그 너머의 세계는 풍요롭다.

말씀의 세계는 이상한 세계이다. 알 것 같은데 알 수 없는 의미들로 가득하다.

읽어도 읽어지지 않는 언어의 향연, 말씀의 세계에 한 참 머물면 경외의 감정에 젖어든다.

말씀의 세계에 압도되면 나의 작아짐을 경험한다. 그러나 낯선 세계를 통과하면 그 세계의 모든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가 된다.

언어의 한계를 넘어서면 숲의 이야기도 말씀의 이야기도 모두 나의 이야기가 된다.

제주만이 가지고 있는 숲의 이름 '곶자왈'이다. ‘곶=숲’이라는 뜻이고, ‘자왈=가시덤불’이라는 뜻이다. 가시덤불로 우거진 숲인 것이다.

화산이 폭발해서 용암이 반죽처럼 흘러내릴 때 점성이 약한 용암이 흘러간 곳은 넓고 평평하게 굳어진다. 바닷가의 넓고 평평한 암반지대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점성이 강한 용암은 단단해서 거칠게 쪼개지며 돌 상태로 굳어지게 된다. 울퉁불퉁한 굴곡 지형에 가시덤불만 우거져 만들어진 숲 바로 ‘곶자왈’이다.

제주농민들에게 ‘곶자왈’은 농사를 지을 수 없는 버려졌던 땅이었다. 인간의 기준에서 보면 나쁜 땅과 좋은 땅이 있다. ‘곶자왈’은 나쁜 땅이었다. 그런데 버려진 땅이 최근에는 생명의 보고로 주목받고 있다.

비워야 채울 수 있다. ‘곶자왈’에는 하천이 없다.

대신 거칠게 쪼개지고 깨진 틈으로 빗물을 받아 품고 있다. ‘곶자왈’이 품은 많은 물은 땅 위의 생명들에게 적당한 습도와 수분을 제공한다.

오랜 세월동안 지하 수백 미터 아래로 지하수를 만들어 낸다. 지하수를 생명수라 부른다면 ‘곶자왈’은 생명수를 만드는 천연공장인 것이다.

[많은 식물들이 자랄 수 있는 환상숲 곶자왈 숨골. (사진=환상숲제공)]

[많은 식물들이 자랄 수 있는 환상숲 곶자왈 숨골. (사진=환상숲제공)]

흙은 생명이다. 흙이 많은 땅이 좋은 땅이고 나무가 잘 자란다.

제주에서는 흙이 많은 지역에서는 숲을 보기 힘들고 오히려 흙을 찾아보기 힘든 ‘곶자왈’에서 돌 틈 사이에 뿌리내린 나무들로 무성하다.

‘곶자왈’에서 숲이 장관을 이룬다. ‘곶자왈’ 지대에 뿌리 내린 나무는 울퉁불퉁 뿌리를 내려 바위를 감싸 안고 있다.

가지들은 오랜 세월 꺾이고 눌리며 난 상처들을 안고 하늘로 뻗어간다. 어디까지 나무이고 어디까지 돌인지 생존을 향한 열정이 경이롭다.

바위틈에서 싹이 튼 나무는 생존을 위한 투쟁에 돌입한다. 여린 나뭇잎은 키 큰 나무들 사이를 비집고 하늘로 올라가고 뿌리는 수분이 마르기 전에 돌 틈 습기를 머금기 위해 더 깊이 뻗어간다.

연약한 뿌리는 돌 틈을 비집고 들어가 수분과 양분을 얻어 성장한다. 가만히 듣고 숲의 소리를 듣고 있으면 생존의 함성 소리가 들려온다.

생존 소리 가득한 ‘곶자왈’은 사람들에게 버려진 땅이지만 생태학적 생명의 보고이다. 성경에는 버려진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다윗이 만든 아둘람공동체가 대표적이다.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삼상22:2)

아둘람공동체는 버려진 사람들 집합소였다. 환난 당한 사람, 빚진 사람, 원통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아둘람공동체에서 새벽녘에 동이 떠오르면 다윗은 이 사람들과 함께 노래를 불렀다.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야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시57:8)
“주의 인자는 커서 하늘에 미치고 주의 진리는 궁창에 이르나이다.”(시57:10)

울퉁불퉁 거친 사람들의 숨소리들 사이로 하늘의 은혜가 생명수가 되어 스며들었다. 생명의 물이 깊이 흘러 영혼의 심비까지 이른 것이다. 예수공동체 역시 버려진 사람들 사이에서 시작되었다.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는 자들에게 빛이 비취었도다.”(마태5:16)

복음은 좋은 땅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다. 거칠고 울퉁불퉁한 땅에서 눌리고 꺾이고 고난당하며 하늘로 올라간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어디까지 축복이고 어디까지 고난인지 혼재되어 있다. 그래서 복음의 신비는 경이롭다. 핍박 속에서 싹이 튼 복음은 생존을 향한 투쟁에 돌입한다.

연약한 손길로 고난의 거친 광야를 해치고 더 깊이 들어간다. 버려진 땅에서의 생존 투쟁은 어디에서나 낯설다. 그러나 곧 나의 이야기가 된다.

오늘도 경이로운 숲에서 버려진 사람들의 복음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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