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울아빠의 영화읽기]강철비2

<기독영화평론가 김양현 목사>
위기속에서 이해와 화해, 대화를 열다

다니엘 바렌보임과 에드워드 사이드가 함께 만든 오케스트라가 있다. 이른 바 서동시집 오케스트라다. 이스라엘 학생들과 팔레스타인 학생들로 구성된 오케스트라라는 점에서 신선한 충격을 던진다. 이 오케스트라의 조합 자체가 상징적이며 정치적이다. 유대인 바렌보임과 팔레스타인 출신 사이드의 창의적인 시도가 신선하다. 더 이상 과거에 얽매일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세대와 함께 새로운 화해의 시대를 열자는 것이다. 예술가적 상상력이 신선한 정치적 충격을 던진다.

양우석 감독의 신작 '강철비 2 : 정상회담'도 정치적 예술로 볼 수 있겠다. 신화학자 기어츠에 의하면 모든 신화는 다분히 현실의 반영이다. 그리고 또한 현실을 주도해 나가는 성격이 있다. 불가능하고 답답한 현실이 신화의 세계에서는 마음껏 펼쳐진다. 그러함으로 신화적 상상력은 현실을 이끌어 간다. 영화도 그렇다. 영화는 우리네 일상의 이야기를 토대로 만들어 지지만 일상을 극복하고 해결하려는 의지가 담겨있다. 영화적 상상력이 얼마 후에 현실이 되기도 한다. 스탠리 큐브릭이 오래전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통해 표현한 것을 엘론 머스크가 현실로 만들고 있지 않은가?

양우석 감독은 대한민국이 마주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의제를 자신의 스크린에 담았다.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 오래된 유물이 되어 버린 냉전 체제가 존재하는 곳, 언제나 전쟁의 도발이 일어날 수 있는 곳, 우리의 문제를 담았다.

영화의 주요 사건은 북한의 원산에서 일어난다. 원산의 한 호텔, 세 정상이 한 자리에 모였다. 한국, 미국 그리고 북한의 정상들이 평화회담을 완성하기 위해 한 자리에 모였다. 북한은 핵을 포기하고, 미국은 대북제제를 풀고 수교를 맺는 협정이다. 사인을 앞두고 있지만 미국 대통령의 연기 요구로 파행을 맞는다. 의회를 설득하려면 우선 북한 내 핵무기를 미국에 가지고 가서 해체해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의 위원장은 그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냐고 받아친다. 회의는 파행을 향해 가고 있다. 한국의 대통령은 두 정상을 설득하고 달랜다.

이 때 갑작스런 위기가 회담장을 몰아친다. 북한의 호위총국장 박진우가 군사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다. 그는 북한의 지도자인 조선사가 못마땅하다. 북한의 자존심과 인민들의 미래를 미국 측에 저당 잡히는 것으로 여겼다. 박진우는 세 정상을 원산 앞 바다에 대기중인 핵잠수함에 감금시킨다. 그리고 자신이 준비한 계획대로 일본을 향해 핵 미사일을 발사하고 전쟁을 일으킨 후 북한의 정권을 접수하려 한다. 일촉즉발 위기가 한반도를 몰아친다.

한편 햄잠수함의 함장실에 갇힌 세 정상은 이런 저런 이유로 옥신각신한다. 우선 북한 조선사 위원장은 담배 한 대 피우겠다고 불을 붙이려 한다. 그러자 미국 대통령 스무트는 실내에서 담배는 절대 안 된다고 빼앗는다. 잠시 후 스무트는 배가 고프니 먹을 것을 가지고 오라고 소리친다.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먹을 것이라니 참 배짱도 좋다. 물론 스무트는 미국의 첩보원, 혹은 백악관이 신속히 자신을 구할 것이라 확신하고 있다. 반면 대한민국 대통령 한경재는 이 위기를 어떻게 해결할지 깊은 생각에 잠겨있다.

영화는 이렇게 세 정상들을 강제로 한 곳에 몰아넣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영화적 상상력에서나 있을법한 이야기다. 그러나 감독의 상상력은 오히려 현실의 답답함을 풀어나가는 매카니즘으로 작동한다. 잠수함 내 함장실 좁은 공간에 함께 있는 세 정상은 의외로 솔직한 면모를 보여준다. 담배 한 가치, 배고픔을 달랠 식사거리, 배설해야 하는 현실은 그들의 속내를 가식 없이 드러나게 한다. 2차 대전 당시 미국의 참전을 이끌어내기 위해 영국 수상 윈스턴 처칠은 루즈벨트와 함께 사우나실에 들어갔다고 하지 않은가? 가식을 벗고 솔직함으로 그는 미국의 참전을 이끌어냈고 결국 2차 대전의 위기를 극복한다. 양우석이 그린 강철비 2의 함장실도 그러하다. 공통의 위기 속에서의 절박함이 이해와 화해, 대화로 이끈다. 이 곳에서 살아나갈 수 만 있다면 정상들은 평화회담에 사인을 할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상상력이라 비판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양우석 감독의 이런 상상력이 좋다. 이왕이면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상상이 좋지 않은가? 한국 대통령의 적극적이고 희생적인 중재 속에, 미국과 북한의 정상이 협정에 사인을 하면 좋지 않겠는가? 소위 톱다운 방식의 일괄 타결이 우리 민족에 좋지 아니한가? 매사에 부정적인 것만 말하고 안 되는 것만 따지는 부정의 정치가 과연 옳은 것인가? 아니다. 이왕이면 희망적이고 미래적인 아젠다를 생산하는 정치가 옳다. 그런 정치적 리더십에 국민들도 희망을 가지고 꿈을 꾸는 것이다. 당장 무엇인가 이루어지지 않을 지라도 언젠가 우리가 꿈꾸던 현실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양우석 감독의 '강철비 2 : 정상회담'이 영화적으로 얼마나 완성된 것인지를 논하고 싶지 않다. 어차피 헐리우드의 더욱 발달된 기술력을 우리가 따라잡기엔 역부족일테니. 하지만 그가 던지는 화두는 좋다. 한반도를 위협하는 진짜 적이 누구인지, 누가 우리 겨레의 통일을 지연시키는 지, 우리 민족의 미래를 발목 잡는 지 확인해 보면 좋겠다. 이왕이면 그의 말이 진실로 드러나면 좋겠다. 그리고 그가 그려낸 영화 속 결론이 현실에서도 추동된다면 더욱 좋겠다. 아울러 그의 기술적 시도가 언젠가 헐리우드를 앞지를지도 모를 일이다. 이왕이면 미래를, 그리고 희망을 이야기하자.

※본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론도 보장합니다.

[김양현 목사는 제주사랑의교회를 섬기고 있으며 기독교적 관점으로 영화를 바라보는 기독영화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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