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울아빠의 영화읽기]살아있다

<기독영화평론가 김양현 목사>
탐욕의 세상에서 과연 살아있는가

자고 일어나니 유명인사가 되었다면 좋을 텐데, 온 세상이 엉망이 되었다. 밤늦게까지 게임을 하다 늦게 일어난 준우는 엄청난 현실과 맞닥뜨린다. 창 밖이 시끌 법석하여 내다보니 사람들이 이상하다. 행동도, 말도 이상하다. 점점 좀비로 변해간다.

급히 텔레비전을 켜니 속보가 뜬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바이러스로 인해 사람들이 미쳐가고 있다는 것이다.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혈액에 문제가 생기며 급격한 폭력성을 띠다 결국 좀비가 된다는 것이다. 좀비가 된 자들은 일반인을 물어뜯으니 집 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경고한다.

당황한 준우는 가족들이 걱정되어 연락을 해 보지만 통화가 되지 않는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준우는 혼란스럽다. 밖이 어찌 돌아가는지 궁금하던 준우가 현관문을 살짝 열자, 마침 밖에 있던 옆집 남자가 들이닥친다. 살려달라고 외치며 밀치고 들어오는 남성을 준우는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본다. 그도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남자는 자신은 괜찮다고 안심시키지만 준우는 믿을 수 없다. 그를 내몰려는 준우에게 남성은 화장실만 쓰고 나가겠다 제안한다. 잠시 후 화장실 안에서 들리는 이상한 소리를 느낀 준우가 문을 열자, 그 남성의 눈이 빨갛게 충혈되면서 이상 행동을 한다. 그도 감염된 것이다. 한 바탕 소동 후에 준우는 겨우 그 남성을 집 밖으로 쫓아낸다.

집안에 홀로 갇힌 준우는 생존을 위한 처절한 싸움을 시작한다. 우선 현관문 안쪽에 냉장고로 바리케이트를 치고, 창문들은 닫는다. 남은 음식을 꺼내서 정리하고 핸드폰 신호를 잡으려 애쓴다. ‘여기 살아있다.’고 구조 신호를 보낸다.

하루가 가고, 이틀이 지나고 급기야 일주일이 지난다. 음식도 동나고 수도도 끊겼다. 핸드폰 신호도 잡히지 않고 컴퓨터 랜선도 끊어졌다. 고립무원이다. 이후 준우는 점점 미쳐간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살아날 방법이 없고, 살아나갈 수도 없다. 밖은 좀비들이 장악하고 있다. 아파트 촌에서 준우 혼자 인간으로 살아남았다. 희망이 사라지는 순간이다. 준우는 스스로 목숨을 끊고자 극단적 시도를 한다.

바로 그 때 준우의 몸에 레이져 빛이 쏘아진다. 레이저 포인트는 거실 벽을 향하고 액자 속 글자를 가리킨다. 안. 녕. 바. 보. 그렇다. 누군가 살아있다. 건너편 아파트에서 쏘아진 신호다. 준우는 건너편 생존자인 유빈의 존재를 확인한다. 이제부터 두 사람의 처절한 생존기가 전개된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세상을 혼란스럽게 하는 시점에 절묘하게 개봉된 영화다. 영화는 바이러스로 인해 좀비가 된 인간 군상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들은 배타적 폭력으로 서로를 죽인다. 폭력은 급속도로 전파되고 이내 온 아파트는 죽음의 공포가 휩쓴다. 살아있는 존재는 준우와 유빈 뿐이다.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은 그들은 서로를 보호하고 생존하기 위해 힘을 모은다. 모든 사람들이 비정상적 좀비가 된 현장에서 정상의 인간으로 살아남기는 너무나 힘겹다.

나는, 영화를 좀비나 바이러스의 감염으로 보지 않았다. 내 눈에 그들은 탐욕에 찌든 인간 군상들로 보인다. 아파트 공화국에 퍼져 있는 배타적 탐욕이다.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퍼져나간다. 아파트가 삶의 목표이자 돈벌이의 수단이다. 결국 삶의 보금자리가 되어야 할 장소는 죽음의 공간으로 변한다.

준우와 유빈이 살아남는 길은 이 죽음의 아파트를 벗어나는 것이다. 좀비가 창궐하고 먹을 것이 없어지고 죽음의 현장이 된 후에 겨우 두 사람은 깨닫는다. 이곳이 죽음의 장소라는 것을. 이 곳을 벗어나야 살 수 있다는 것을. 삶의 장소로서의 아파트가 죽음의 공간으로 변하고 난 뒤에 겨우 깨닫는 주인공들처럼, 우리도 쉽사리 벗어나지 못한다. 붙들고 있고, 버티고 있다.

준우와 유빈은 아파트, 좀비들의 공간에서 벗어남으로 비로소 자유를 얻는다. 생명을 얻는다. 감독의 메시지는 명료하다. 벗어나야 살 수 있다. 그 곳을 탈출하는 그들이 삶을 얻는다. 또한 그들은 깨닫는다.

나 혼자가 아닌 누군가가 있어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과의 연대가 필요한 지점이다.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연대, 어쩌면 오늘 교회가 가야 할 길이 아닐까? 탐욕의 좀비가 된 세상에서 고군분투하는 자들로, 적진의 한 가운데서 정의를 추구하는 레지스탕스로, 스탠리 하우어워스의 말을 빌리면, resident aliens로서의 삶을 함께 살아가는 하늘 공동체로 살아가는 자들이 교회 아닌가? 그리하여 묻고 싶다. 그대 탐욕의 한 복판에서 하늘 백성으로 ‘살아있는가?’

※본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론도 보장합니다.

[김양현 목사는 제주사랑의교회를 섬기고 있으며 기독교적 관점으로 영화를 바라보는 기독영화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추천기사

스페셜 그룹

제주 많이본 뉴스

중앙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