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울아빠의 영화읽기]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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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울아빠의 영화읽기]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기독영화평론가 김양현 목사>
약한 자들이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구원의 탄원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셨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 탄원하라고 하셨다. 예수께서 가르치신 기도의 핵심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는 것이었다. 하늘에서 이루어진 나라가 이 땅에서 실현되는 구체적인 현상은, 일용할 양식이다. 그리고 서로 용서하는 일이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마지막으로 당부하신다.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하고, 악에서 구해달라고 기도하라 하셨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시험에 들 것을 내다 보셨을 뿐 아니라, 그들이 악으로부터 어려움을 당할 것을 아셨다. 예수께서는 구조적인 악이 그 영향력을 행사하는 세상에 사셨고, 제자들도 그로 인한 어려움을 당할 것을 아셨다. 로마 제국은 군사력으로 억압할 것이고, 헤롯 일가는 폭정을 일삼을 것이며,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살 것이기에, 제자들을 포함한 연약한 백성들은 이러한 구조적 악에 시달릴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가르쳐주신 바 대로 그들은 그러한 악의 위협에서 기도할 것이며,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그 탄원을 들으실 것이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라는 탄원은 오늘도 여전히 유효하다. 악은 너무나 만연해 있고 구조적으로 얽혀 있다. 홍원찬 감독은 자신의 신작을 노골적으로 이름 붙였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그의 주인공 인남(황정민)이 처한 상황이 그러하다. 그는 총체적이고 구조적인 악의 사슬에 얽혀 있다. 도무지 헤쳐 나갈 곳이 없을 정도로 촘촘하게 그를 옭아매고 있다.

우선 그는 자신의 과거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그는 실패한 아니 배신당한 국정원 조직원이다. 상부의 지시를 받아 임무를 수행했으나 그 과정에 문제가 생겼고, 다시는 조국 땅을 밟지 못하는 이방인 신세가 되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청부 살인이 전부다. 청부 살인이 옳고 그른지 여기선 논의의 대상이 아니다. 다만 그는 그러한 일에 얽혀 있고 헤어나오지 못한다. 그는 마지막으로 야쿠자 두목을 처치한다.

자신의 삶을 새롭게 설계하기 위해 그는 파나마를 택했고, 거기서 여생을 보내고 싶어한다. 그러나 운명은 그를 놓아주지 않는다. 과거 그의 직속상관으로부터 걸려온 전화, 그리고 자신의 연인이 잔인하게 죽었다는 소식, 이어 인남은 자신에게 딸이 있고 그 딸이 태국의 조직 폭력배들에게 납치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태국으로 간 인남은 정보원과 함께 딸을 추적해 가고 그녀의 딸이 장기밀매조직에게 납치되어 수술대 위에 오르게 되었다는 사실을 파악한다. 인남이 딸을 구하러 가려던 찰나, 레이라는 야쿠자가 그의 길을 가로막는다. 얼마 전 제거한 야쿠자 두목의 동생이다. 레이는 형의 복수를 위해 인남을 좇았고 방콕의 뒷골목에서 맞닥뜨렸다.

이어지는 레이와 인남의 좇고 쫓기는 추격전,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악의 체계들을 관객은 마주하게 된다. 어린이들을 납치해서 불법 장기 척출을 하는 자들, 마약을 공급하는 자들, 마약 조직에게 뒷돈을 받고 눈감아 주는 경찰들, 그리고 야쿠자. 마치 누가 더 나쁜 인간인지, 누가 더 악당인지, 무엇이 더 심각한 악인지 구분할 수 없는 장면들이 눈 앞에 펼쳐진다. 그 한복판에 인남이 있다.

관객들은 두 가지 의문에 휩싸일 것이다. 하나는, 정말 저런 악이 현실에 존재할까? 라는 의문이다. 보통인으로 살아가는 대부분의 관객은 스크린에 펼쳐지는 악행 중 그 어느 하나라도 맞닥뜨릴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감독은 전혀 없는 이야기를 펼치진 않는다. 그렇다면 두 번째 의문, 과연 인남은 이 모든 악을 처리할 능력이 있는가? 그는 이런 악을 극복하고 자신의 딸과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오늘 우리는 두 가지 의문에 감독의 탄식을 접한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감독 조차 이렇게 말할 수 밖에 없다. 이것은 정치도, 법도, 어떤 인간도 해결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인간을 초월한 존재에게 탄식한다. 이러한 악에서, 총체적 부조리에서 구해달라고.

극 중 인남이 맞닥뜨리는 사건은 아닐지 몰라도, 우리도 어쩔 수 없는 구조적 악을 마주하고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정치의 실종, 경제의 한계, 도덕과 윤리의 부재, 텔레비전 뉴스를 틀면 극 중 인남의 상황보다 더욱 심각하고 한 숨 쉬게 하는 사건의 연속을 보게 된다. 어떻게 인간이 저리도 뻔뻔할까 라고 탄식하게 하는 정치인들, 법과 제도를 우습게 여기는 판, 검사들, 가난하고 약자들인 노동자들을 외면하고 거리로 내쫓는 잔인한 경제 논리들, 그리고 우리에게 몰아치는 각종 자연재해들, 거대한 악의 구조 속에 우리 또한 놓여진 채 살아간다.

오래전 이집트의 노예들이 부르짖던 탄원, 바벨론의 포로들이 부르짖던 탄식, 로마 치하에서 부르짖던 탄원, 오늘 우리가 부르짖어야 할 탄원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야말로 최고의 희망 아닐까? 하늘에 계신 이가 듣고 이 땅을 새롭게 하시기를, 공의와 살롬의 나라를 이 땅에 실현하시기를. 약한 자들이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구원의 탄원을 외치자.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본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론도 보장합니다.

[김양현 목사는 제주사랑의교회를 섬기고 있으며 기독교적 관점으로 영화를 바라보는 기독영화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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